[안태근의 영화100년사] 영화의 장르 탄생

안태근 | 기사입력 2022/11/09 [18:20]

[안태근의 영화100년사] 영화의 장르 탄생

안태근 | 입력 : 2022/11/09 [18:20]

안태근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 경성전시의 경  © 인디포커스

매일신보 19191028<의리적구토><경성전시의 경> 광고지

 

영화의 시작은 카메라의 발명 이후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기점이었다. 원시인들은 카메라 대신에 돌을 들어 벽화를 남겼다. 그 벽화가 오늘날에도 남겨져 우리는 사진을 통해 원시 벽화를 접한다. 인류는 미술을 발전시켰고 자연과 사물 및 스스로의 모습을 포착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는 회화에 대한 시도를 하여 발이 8개인 들소를 그렸다. 인류의 동영상에 대한 노력은 멈추지 않았고 꾸준히 연구하여 스틸 카메라의 발명 후에도 동영상 기록을 연구하였다.

 

영화의 실제적인 창조자 에드워드가 달리는 말을 촬영하며 미지의 세계였던 동영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결국 인류는 동시기 미국과 프랑스에서 동영상카메라를 발명하였고 활동사진이라고 불린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1889년에 에디슨이 찍은 30초 간 움직임을 보여준 권투영화나 <무희 소녀>는 움직임을 포착하여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최초의 영화는 <공장을 퇴근하는 노동자>, <열차의 도착> 등이었다. 모두가 움직임을 포착한 다큐멘터리였던 것이다. 결국 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그랑카페에서 <열차의 도착> 등을 유료로 대중 공개하여 최초의 영화로 공인되었다.

 

영화는 이렇듯 다큐멘터리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재창조라고 하였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소재로 하여 촬영되었는데 비허구적인 영화로 우리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기록한 것을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1926년 로버트 플라어티(Robert Flaherty)<모아나(Moana)>를 본 존 그리어슨이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큐멘터리는 장르를 널리 알린 작품이라 평가되는 1922년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는 당시 에스키모 가족에 대한 민족지적 기록을 촬영한 것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출발했지만 카메라가 갖는 기록성보다 이야기 도구로서의 기능을 아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1902년에 죠르쥬 멜리어스(Georges Melies)에 의해 촬영된 최초의 극영화는 거의 무대를 촬영한 정도로 시퀀스 단위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1903년 에드윈 포터는 최초의 서부극인 <대열차강도(大列車强盜)>를 통해 장면을 바꾸어 줄거리를 담아낸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극영화 장르는 급속히 확산되었는데 소설 이상의 극적인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1927년에는 첫 발성영화 <재즈 싱어>가 제작되었다.

 

영화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빨리 정착한 예술장르가 되었다. 이후 급속도로 전세계로 전파되어 확산되며 세계영화사는 글로벌화 된다. 지가 베르도프가 1929년에 만든 <카메라를 든 사나이(The man with the movie camera)>는 소비에트 민중의 삶을 담아내려 하였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진실을 말하기 위해 카메라로 말한다고 하였다

 

레니 리페슈탈의 1935<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는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선전영화이다. 해설은 하지 않고 영상과 음악, 음향만으로 만들었다. 촬영장비가 간편해지며 핸드헬드(handheld) 기법을 사용하고 고감도 필름을 사용하는 시네마 베리떼 기법이 등장한다. 이후 훨씬 사실적인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촬영장비와 기법의 진화는 개인들도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1919년에 제작된 <경성전시의 경>은 서울시내의 여러 곳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리고 이필우가 촬영한 <조선정구대회><순종 장례식>이 있다. 초창기 다큐멘터리는 필름이 현존하지 않고 활자기록으로만 존재한다. 한국에서 최초의 영화는 김도산의 <의리적구토(義理的仇討)>라지만 <경성전시의 경(京城全市)>이 단성사에서 먼저 상영되었다. 단지 다큐멘터리라는 편견으로 인해 연쇄극이지만 영화로 인정받은 <의리적구토>를 기준으로 하여 19191027일에 맞추어 영화의 날이 지정되어 1963년부터 매년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연쇄극 <의리적구토>는 연극 공연 중에 상영된 영상이라서 이것을 영화로 볼지는 이견이 분분하다. 이후 최초의 극영화는 만주 국경지대에서 있었던 활극을 영화화 한 김도산 감독의 1923년작 <국경>이다. 이 영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영 하루 만에 종영하게 되었고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도 없어 공식 인정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192349,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저축 장려용으로 만들어 상영한 윤백남 감독의 계몽영화 <월하의 맹서> (2, 1,021피트)가 최초의 극영화로 기록된다. 그리고 순수히 한국인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영화는 박정현(朴晶鉉) 감독, 이필우(李弼雨) 촬영으로 만든 1924년작 <장화홍련전>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 의해서도 다큐가 제작되었는데 1925년에 우리나라의 풍물과 문화를 촬영한 성 베네딕도 선교회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다. 1940대 이전의 일제강점기에는 식민통치를 위해 제작되는 홍보용 다큐멘터리가 거의 다이다. 콜레라 예방을 위한 <호열자>라는 영화, 홍수예방을 위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홍보영화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고 일제에 의해 문화영화로 분류되었다. 이렇듯 다큐멘터리는 우리 생활 주변에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1950년대 우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기록은 많지 않다. 미군정이 투표를 권장하기 위해 기획한 다큐멘터리를 최인규 감독이 맡아 제작했다고 신상옥, 정창화 감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전후로 군사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다.

 

영화의 3대 장르 중 애니메이션이 있다. 동영상 만화에 목소리와 배경음을 넣은 만든 영화이다. 1877년에 프랑스에서 프락시노스코프란 기계로 움직임을 구현한 것을 보통 애니메이션의 시초로 규정한다. 스토리가 제대로 담긴 애니메이션은 윈저 맥케이가 만든 1914년의 <공룡 거티>이다.

 

1930년대 이후 2D 애니메이션은 극영화가 보여줄 수 없는 초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워너브라더스 등과 일본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미국 일본은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의 선도국가가 된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방식의 3D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메일 : khh53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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