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훈일유(一薰一蕕), 과에 가려진 공

황재현 | 기사입력 2022/09/19 [13:18]

일훈일유(一薰一蕕), 과에 가려진 공

황재현 | 입력 : 2022/09/19 [13:18]

▲ 박상진 서울대학교 사범대 연구생(교육사 전공)     ©인디포커스

 

최근 영국 왕실은 새 주인을 맞이하였죠. 바로 찰스 3세입니다. 이제 그 이름마저 낯설게 된 이분은 무려 60여 년 동안 왕세자로 지낸 매우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70년 재위에 96세의 나이까지 국정을 이끌었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때문이었죠. 게다가 왕세자로 있는 동안 본부인인 다이애나 비가 비명횡사하였고, 그 원인 중 하나로 곧 왕비가 될 카밀라 파커 볼스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향후 영국 왕실에 대한 존폐론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도자의 이력, 그 중에서도 공과(功過)에 대한 부분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삼국지 마니아층 대부분이 저평가하는 지도자 중 한 명이 바로 손권인데요. 태어날 때부터 유명했던 탄생 설화부터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강동 6주의 주인이 된 이력까지, 너무도 매력적인 배경을 지닌 그가 이렇게 마니아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형주를 둘러싼 그의 행보입니다.

 

마니아층에서 논란이 많은 스토리가 바로 형주 소유권에 관한 것인데요. 아시는 것처럼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기와 유종마저 각 진영으로 찢어지자, 남북으로 찢어진 형주의 소유권을 두고 동맹 내에서 미묘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첫 시발점은 형주 4군에 대한 유비의 정벌이었죠.

 

관우, 장비, 조운을 앞세운 유비의 이 거침없는 행보는 손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공안(公安)을 거점으로 한 형남(荊南)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혼인 동맹부터 시작해서 노숙과 여몽, 육손으로 이어지는 강릉 공략에 이르기까지, 손권의 형주를 향한 지리하고도 끈질긴 도발은 마침내 관우, 장비의 사망과 이릉대전으로 이어지면서 양측 모두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궁(二宮)의 변으로 불리는 후계자 갈등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특정한 아들에게 쏟은 사랑과 장남 사후 그 뒤를 이은 아들에 대한 미움이 교차했던 이 사건은 한국사에 등장하는 후백제에서 벌어진 신검의 난, 조선 초 제1차 왕자의 난과 그야말로 데칼코마니 같은 비극으로 유명합니다. , 차이가 있다면 손권이 돌연 그 사랑을 철회하면서 두 아들 모두 운명이 엇갈림은 물론, 끝내 자신이 지켜야 할 오나라마저 침몰시키고 말았다는 것인데요. 창업주나 다름없는 사람이 하필 국가의 백년대계를 앞두고 벌인 이 참담한 사건이 손권에 대한 마니아의 비판을 불렀던 것입니다.

 

'일훈일유'에서 ()’은 향기 나는 풀을, ‘()’는 악취가 나는 풀을 이릅니다. 이는 향기 나는 풀과 누린내 나는 풀을 같이 놓으면 향기는 악취에 가려진다는 뜻으로, 선은 쉽게 잊히고 악은 오래도록 전해지는 것을 비유하죠. 춘추좌전(春秋左傳)노나라 희공(僖公) 4년 기록에서 유래한 이 성어 역시 놀랍게도 후계자를 둘러싼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진헌공(晉獻公)이 여희(驪姬)라는 희대의 악녀를 얻고자 친 점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해석을 따르려 하니 나온 말이거든요. 거북점을 친 점쟁이가 한 말에서 말입니다.

 

시초점()은 영험하지 않으나 거북점은 영험하니 더 영험한 것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요언(其謠)에 이르기를 과분하게 총애하면 교만해져서() 군주의 숫양을 빼앗는다. 향초와 악취 나는 풀을 같이 놔두면 10년이 지나도 악취가 난다(원문은 筮短龜長不如從長且其繇曰專之渝攘公之羭一薰一蕕, 十年尙猶有臭이다.)’고 하옵니다.”

 

헌공이 취한 여희는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驪戎, 여융-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던 이민족. 그들이 머물던 곳은 여산(驪山)이었다고 한다.)에서 데리고 온 전리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에게 반해 어리석은 선택을 한 덕에 큰 아들 세자 신생(申生)이 죽고, 다른 아들들인 이오(夷吾)와 중이(重耳)마저 도주하죠. 게다가 그녀 의도대로 아들 해제(奚齊)가 뒤를 잇게 됩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그 결과는 진나라의 대혼란이었죠. 결국 여희와 해제도 죽고 이오와 중이가 보좌를 연이어 찬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이는 제환공(齊桓公)과 더불어 패자로 병칭되는 유명한 진문공(晉文公)이 되기는 하지만요. 이런 중이도 무려 19년이나 천하주유를 하게 만들었으니, 여자 하나 잘못 들인 암탉의 화(牝鷄之禍)’, 또는 집안 분란(蕭墻之禍)’의 후유증은 실로 무섭다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국 왕실의 현재 모습은 늘 지도자들에게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 찰스 3세의 엇나간 행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책임이 다이애나 비 죽음은 물론, 왕실 폐지론에 불을 붙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 국왕인 찰스 3세에게도 큰 짐으로 남았을 뿐 아니라 영국 왕실마저 위기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후대의 사가들이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도자는 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임을 잘 보여주는 실례가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도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여권도 이준석 리스크와 더불어 차기 당권을 둔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고, 야권도 그에 못지않게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인해 상당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정치만 난무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치는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국민 앞에 우리 정치인들이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상대를 향해 삿대질하기 전에 본인들의 악취로 인해 본인들이 잘한 일마저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재고해볼 일입니다. 현재 영국 왕실의 모습이 어쩌면 여야 정당과 정치 진영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메일 : cebunigh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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