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흑 3백의 고장, 목포 고하도 목화체험장

김명직 | 기사입력 2021/09/07 [10:39]

1흑 3백의 고장, 목포 고하도 목화체험장

김명직 | 입력 : 2021/09/07 [10:39]

  목포시 고하도 목화체험장에 목화에 대한 역사를 만날수 있다. © 인디포커스 사진/김명직

 

[인디포커스/전남 김명직]우리나라 서남쪽에 위치한 목포는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케이블카가 생기면서 고하도는 관광객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목포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케블카정상 유달산에서 고하도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 인디포커스 사진/김명직


고하도는 목화재배지로 목포라는 지명이 목화의 포구에서 유래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목포는 13백의 고장으로 불렸는데, 1()은 김, 3()은 쌀 소금 목화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하도의 육지면은 ”1899년 일본영사 약송토삼랑(若松兎三郎)은 미국의 육지면이 한국의 기후와 토질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미국산 육지면 재배를 시도, 1904년 육지면 재배가 성공하자 육지면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이 지방의 특산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이후 일본이 목포에서 면화와 호남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해 가는 대표적인 항구로서 자리매김하고 발전했지만, 저항이 많았던 곳 또한 목포였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하도 목화체험정에  꽃송이처럼 하얗게 핀 목화를 볼 수 있다.  © 인디포커스 사진/김명직


고하도의 육지면 재배 성공으로 목화의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전국 3대 항 6대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유래의 고장 고하도는 현재 목화체험장이 자리 잡으면서 60~70세대의 추억의 공간을 만들었다. 목화가 얼마나 생활 속에 깊숙이 함께했는지 유행가 가사에서도 볼 수 있다이러한 목화를 산업화의 발전으로 농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작물로 추억의 목화밭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뿐, 아이들의 현장 학습에 꼭 한번 가보면 좋을듯하다.

 

  고하도 목화 체험장에는 목화꽃과 열매 솜 송이 까지 함께 볼 수 있다. © 인디포커스 사진/김명직


우리나라의 목화 재배는 1363(공민왕 12)에 문익점(文益이 중국 원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를 가져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경상남도 산청에서 목화 재배에 성공했다. 문익점이 도입한 목화는 아시아면(동양면) 이었는데, 이후 1904년에 일본 영사 와카마쓰 도사부로(若松原三)에 의해.육지면(미국면) 이 도입되어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전해지고 있다.

 



<이메일 : Kk8113@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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